미용실에서
by Lee Ho Sung
두 달에 한번 꼴로 미용실에 간다. 보통 뒷머리가 덥수룩 해져서 미용실에 갈 때가 되었구나 싶은 생각이 들고도 두세 번 정도 미룬 다음이다. 미용실에 가면 “예약하셨나요? 찾으시는 선생님 있으세요?”를 물어본다. 몇 번 찾은 미용실이지만 담당 선생님을 따로 정하지는 않았다. 특별히 원하는 스타일이 없다 보니 늘 우물우물하다가 ”깔끔하게 잘라주세요.”라는 애매한 요구를 하고 마는데, 선생님들 마다 “깔끔하게”의 기준이 다르다 보니 늘 다른 머리가 나온다. 그 재미로 랜덤 선생님을 선택한다. 오늘의 커피랄까.
두 달에 한번 꼴로 내 얼굴을 구석구석 자세히 살펴본다. 미용실에 왔을 때다. 환한 조명 아래에 큰 거울 앞에 앉아 있다. 커트보를 두르고 있어서 손도 쓸 수 없으니 그저 앞의 남자를 쳐다볼 수밖에 없다. 머리를 잘라 주시는 선생님도 뭔가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 손님에게는 말 걸지 않는 것이 좋다는 노하우가 있으신지 간혹 머리를 숙여 달라는 요구 말고는 특별히 말을 걸지 않으신다. 사실 거울을 매일 보긴 한다. 면도를 할 때 빠진 곳이 없는지를 보기 위해 잠깐, 머리를 말릴 때 이상 하진 않은 지 잠깐. 하지만 목적 없이 내 얼굴을 살펴보는 것은 미용실에 앉았을 때가 유일하다.
일단 얼굴이 크다. 물론 앞 머리를 집게로 집어 둔 것이 이유일 수도 있다. 이마에 살짝 주름이 있는 것 같다. 눈썹을 내려 의식적으로 이마의 주름을 펴 본다. 주름이라. 어릴 때 아버지와 닮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고등학교 때 학교를 찾아오신 아버지를 친구가 바로 알아보고 나를 찾아 주기도 했었다. 하지만 나는 도대체 어디가 닮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마흔이 되어가는 내 얼굴을 들여다보니 닮은 구석이 있는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지금 나의 얼굴이 내가 기억하는 아버지의 얼굴의 시작 정도가 되는 것 같다.
얼굴의 좌우를 비교해 본다. 언젠가 봤던 기사에서 좌우 대칭 일 수록 미남이라고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쌍꺼풀도 다르고 눈의 모양도 다르고, 코도 좀 비뚤어졌다. 다행히 입은 가운데에 잘 있어 보이지만 미남은 틀렸다. 혹시 균형을 맞춰 볼까 싶어서 눈도 한쪽을 조금 크게 떠 보고 코도 한쪽에 힘을 줘 본다. 그렇다고 잘 생겨 보이진 않는다. 뭐 괜찮다. 이 정도 얼굴이 딱 와이프가 걱정하지 않아도 될 정도다.
거울을 바라보고 있으니 나는 처음 만나는 사람들에게 어떤 인상 일까 싶다. 나이가 들어가면 인생이 얼굴에 남는다고 했는데, 내 얼굴에는 부모님이 남겨 주신 판 위에 무엇이 남았을까? 요즘에 회사에서는 AI 같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데 내 무표정한 얼굴을 보니 조금 딱딱해 보이기도 한다. 디자이너 선생님께 티가 나지 않게 살짝 미소를 지어 본다. 좀 더 낫다. 웃고 살아야지.
이미 한참 전에 끝난 것 같은 커트가 드디어 끝나고 샴푸를 하러 간다. 내가 미용실에서 가장 좋아하시는 시간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다른 사람이 해주는 것이니 중요한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이다. 남이 끓여 주는 라면이 제일 맛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 느낌 때문에 최근에 블루클럽에서 다시 샵(!)으로 돌아왔다.
다시 거울 앞에 앉아서 머리를 말리기 시작했다. “제품 발라 드릴까요?”라고 물어보신다. 예전에는 “집에 바로 갈 것이니 그냥 말려만 주세요.”라고 했지만 지금은 “네. 발라 주세요.”라고 말한다. 잠깐이라도 세팅(?) 된 모습을 보고 싶은 이유다.
요즘 나에 대한 관심이 늘었다. 지난 겨울 아팠던 허리가 트리거가 되었다. 내가 나에게 관심을 좀 가져 달라고 말해준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함께 살고 있는 아이들이 빠르게 성장하니 상대적으로 내가 작아지는 느낌이다. 첫째를 목말을 태워서 열심히 돌아다니던 것이 오래되지 않은 것 같은데, 이제 둘째가 목말을 태워 달라고 하면 허리를 신경 쓰며 멈칫하게 되어 버렸다. 열심히 회사를 다니고, 회사에서 집에 돌아오면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고 그리고 중간중간 회사 걱정을 하다 보니 삶에서 나를 찾을 수 없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삶에서 나를 위한 공간을 좀 더 넓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미용실에 앉아 커피 한잔을 마시며 생전 보지도 않던 잡지를 몇 장 뒤적거린 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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