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ews
출처

“일단 연필을 잡아!”

얼마 전 스승의 날 편지를 두고 끙끙거리고 있는 아들 녀석에게 한 말이다. 아들이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잡았는데?”

A를 입력하니 A만 출력하는 내 아들.

“그럼 일단 “XXX 선생님께”를 써!”

부루퉁한 얼굴로 연필을 잡고 꾸물꾸물 편지를 써내려 간다. 그러고는 얼마 안 되어서 “다 썼다!” 하고 보지 않아도 개발새발 써진 편지를 편지봉투에 담아 가방 속에 던져 버렸다.

며칠이 지나 오늘은 온라인 글쓰기 모임인 글또(글 쓰는 또라이가 세상을 바꾼다)의 첫 듀 데이트다. 미루고 미루다가 늦은 오후가 되어서야 드디어 키보드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일단 제목을 썼다. 미안하다 아들아. 아빠에게도 글쓰기는 어렵다.

늘 글쓰기에 대한 마음의 짐을 가지고 있다. 보다 정확히는 마음의 짐만 가지고 있다. 이럴 때에는 도망갈 수 없는 상황으로 나를 밀어 넣을 필요가 있다. 마치 다가오는 스승의 날처럼. 반 친구들은 모두 편지를 쓰는데 나만 안 쓸 수도 없는 상황처럼. 그래서 지난 달 글또 모임에 지원했다. 그리고 지금 와서는 또 생각한다. “아이고 왜 또 사서 고생을..”

한참 글을 쓸 때 사람들이 왜 글을 쓰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곰곰 생각을 해봤는데, 결국 남기고 싶어서였다. 나는 스타트업에서 일하고, 리더의 길을 선택하면서 전문화보다는 일반화의 길을 가고 있다고 생각해 왔다. 전문화의 길을 가는 사람들은 그 과정에서 논문, 책, 탁월한 코드로 그들의 지식과 경험을 남긴다. 하지만 일반화의 길을 가는 사람은 의도적으로 글을 쓰지 않으면 축적되지 않는다. 그냥 흘러가 버린다. 그래서 글을 써야 한다 싶었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글을 쓰지 않는 지금은 지식과 경험이 축적되고 있지 않는 상황인 거다. 역시 글을 써야 한다.

지금까지 3군데 글을 써왔다.

앞으로 반년 간 이어질 글또에서 10개가 넘는 글을 쓰게 될 텐데 3군데 모두 글을 올리고 싶다. 기술적인 내용도 다듬어 올리고, 회사에서 나와 동료의 삶, 그리고 지나쳐 버리기에 아까운 내 삶의 어떤 순간까지도 기록하고 싶다.

대단한 글에 대한 부담은 떨쳐 버리고, 하나씩 쌓아 나가야지. 바퀴를 다시 굴려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