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육아 시간 중 딸 머리를 말리는 시간을 가장 좋아한다.

그 시간을 갖기가 쉬운 것은 아니다. 도연이를 목욕시키려면 일단 한 10번을 불러야 한다. 그리고 목욕이 끝나고 나면 책을 읽어 준다는 등 조건이 걸려야만 순순히 목욕탕으로 입장하신다. 도연이를 목욕시키고 나서 몸에 수건을 감아주면 꼭 젖은 머리를 하고는 침대 위로 뛰어가서 다이빙한다. 겨우 끄집어 내려서 토끼인지 엘사인지 팬티를 고르는 실랑이를 하고 나면 내복을 골라야 한다. 내복은 오빠와 세트를 맞춰야 하므로 먼저 목욕을 하는 날에는 오빠의 오늘 취향을 물어보러 다녀와야 한다. 옷까지 입히고 나면 드디어 내가 좋아하는 머리 말리는 시간이다.

“손님. 자리에 앉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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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 머리 말리겠습니다.

꼬여 있는 드라이어 줄을 풀어서 따뜻한 바람을 딸아이 머리에 쏘면 휘휘휘 머리가 휘날린다. 처음에는 물도 좀 튀기긴 하지만 생각보다 금세 머리가 마른다. 아직 어리다 보니 머리가 얇아서 그런 것 같다. 머리를 말려주면서 손으로 머리를 대강 빗겨 준다. 머리를 반쯤 말리고 나면 성근 빗으로 전체적으로 머리를 한 번 빗겨 준다. 이 때 빗이 잘나가면 그날은 운이 좋은 날이다. 하지만 대부분은 어딘가에서 걸린다. 묶은 머리끈을 풀면서 머리가 엉켜 있는 경우도 있고, 머리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뭔가 묻어서 엉켜 있는 경우도 있다. 처음 머리를 말려 줄 때에는 정말 조심조심 엉킨 머리를 풀었는데, 이제는 대충 손으로 쓱쓱 풀어도 별로 아프지 않은 것을 알고 있다.

대충 머리가 풀어지고 나면 다시 머리를 말린다. 머리 위쪽은 빨리 마르는데, 머리 아래쪽은 꼼꼼하게 말리기가 쉽지 않다. 그리고 이 녀석은 한 80% 정도 말리고 나면 꼭 언제 끝나는지 물어보고 도망가려고 한다.

“아. 알았어. 10초만 더 말리자. 10. 9. 8. 7…”

뭐, 모근만 잘 말리면 되겠지. 좀 뛰어다니다 보면 다 마르겠지 싶어서 조금만 더 말리고 보내주는데, 꼭 이런 날은 금방 잠이 들어버려서 다음날 머리가 산발이 되어버리고 만다.

이제 딸이 6살이 되었으니, 내가 목욕을 시켜주는 것도 한두 해 정도 남았을 것 같다. 어쩔 수 없다. 목욕은 혼자 하더라도 목욕이 끝나면 아빠에게 머리 말려주고 빗겨줄 시간은 주면 좋겠다.

아. 그러고 보면, 내가 종종 와이프도 머리를 말려주겠다고 하는데 별로 좋아하진 않는다. 역시 딸이 최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