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출근길에 와이프가 “샌프란시스코 출장기는 하나도 재미 없어. 승준이 이야기나 좀 써봐” 라고 말했다. 흠. 뭐 내가 생각도 재미있는 내용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지적할 정도는 아니였던것 같은데. 매일 보는 승준이 매일 이야기 하는 승준이에 대해 왜 쓰라고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여튼 출장기도 잠시 쉬어갈 겸, “아빠와 아들” 이야기를 써본다. 지난 해 여름 포도를 4박스 정도 사서 휴롬으로 포도 주스를 만들어 먹었다. 한번 만들어 먹으니 사서 먹는 포도주스는 더 이상 못 먹겠더라. 올해 여름도 언제쯤 포도값이 떨어지기를 기다렸다가, 포도 주스를 만들었다. 포도 주스도 만들어야 하고 승준이도 함께 봐야 하니 승준이와 함께 포도 주스를 만들기로 했다. 승준이는 나름 열심히 도와주지만 안타깝게도 작업은 더 오래 걸린다. 아 물론 “혼자 포도 주스 만들기” < “같이 포도주스 만들기” < (“혼자 포도 주스 만들기” + “승준이 보기”) 인 셈이니 성공이다. 여튼 포도 씻기를 30분 동안, 휴롬에 포도 넣기를 30분 넘게 한다.

요섹남1 (포도를 휴롬에 넣고 있는 승준이. 내가 넣는 것은 싫어한다.)

포도주스를 먹을 때 마다 엄마 아빠에게 “승뚜니가 만드로쏘”라고 자랑하는것을 보니 기특하기도 하고, 그런 기회를 많이 주어야 겠다 싶어서 요리 중간 중간 승준이를 참여 시켜 보기로 했다. 그래서 몇일 후 조금 더 난이도가 높은 꺳잎 장아찌에 도전 했다. 양념을 만들어서 승준이에게 작은 숟가락을 하나 주고 아빠가 꺳잎을 겹쳐 놓을 때 마다 양념을 슥삭 슥삭. 오. 몇장 했더니 금방 손이 잘 맞는다. 무려 혼자 하는것에 비해서 시간이 더 걸리지 않는 느낌이다.

요섹남2 (즐거운 승준이와는 달리 그저 노동을 하는 모습인 아빠. 승준이 너머에는 아빠의 허물이 벗어져 있다.)

승준이와 놀아 줄 때에는 승준이가 혼자 조금 논다 싶으면 나는 금새 지루해 져서 핸드폰에 손이 가거나, 혹은 쿠션을 베고 눞기 십상 인데, 요리를 같이 하니 이야기가 계속 된다. 어린이집에서 무슨일을 했는지도 물어보고, 엄마랑 도연이가 뭐하고 있는지도 물어 본다.

승준이는 요리를 하는 것이 참 재미있는 모양이다. 하긴 아이들은 새로운 것을 만나면 항상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다. 그것이 꺳잎이든 꺳잎에 양념을 바르는 것이든.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너무도 소소한 일에도 즐거워 한다.

요섹남3 (가지의 느낌이 너무 이상하고 재미있는 승준이)

오감놀이라고 해서 “아빠 어디가?”에서 봤던 것 처럼, 딸기도 주물주물 만지고 두부도 뭉게보고 하는데 그냥 요리를 시켜야 겠다. 딸기잼을 만들고 두부전을 만들면 되니까. 사실 결혼한 후부터 점점 요리를 하는 시간이 줄어 들고 있다. 이전에는 집에서 요리를 하는 것이 가치있는 일이고 집에서 직접 만든 밥과 반찬을 먹어야만 한다라는 생각이 있었는데, 최근에는 그 시간에 다른 일을 하는것이 더 가치있게 느껴진다. 하지만 이렇게 아이들과 함께 하는 요리라면 그 무엇보다 가치있는 시간인 것 같다.

요즘 “요섹남”이라고 요리하는 섹시한 남자가 유행이라는데, 아빠가 비록 섹시함은 물려주지 못했지만, “요리 하는”은 물려 줄 수 있을 것 같다. 앞으로도 맛있는것 많이 만들어 보자 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