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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처음 읽어 보는 소설

오랜만에 어른을 위한 도서관에 갔다. 늘 가던 어린이 도서관 바로 위층이다. 와이프가 아이들과 함께 제주도로 떠나며 맡긴 동화책을 반납하러 가던 길이였다. 왠지 여유를 즐기고 싶은 마음에 늘 읽어오던 실용서 대신 소설을 읽고 싶어 졌다.

판타지 소설 코너도 지나고, 화려한 책 표지를 가지고 있는 코너들도 지났다. 너무 흥미 위주의 소설을 읽기에는 마음 한쪽이 불편하다. 책장을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책들을 모아둔 칸을 발견했다. 지적 허영심을 채워주기에 적당한 분이다. “개미”, “뇌”, “신”, “나무” 등등등. 이 중 몇 권은 읽었던 것 같은데, 무엇을 읽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중에서 가장 얇은 책을 꺼내 들었다. “아버지들의 아버지”. 2권짜리 책이다. 어떤 내용인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터미널에 무작정 가서 만원에 가장 가까운 곳으로 당일 여행을 다녀오는 사람의 이야기처럼 오늘 같은 날에는 의외성이 필요하다. 읽어 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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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폴 고갱)

“아버지들의 아버지”는 인류의 기원을 말한다. 이 인류의 기원을 찾고 있는 고생물학자가 살해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마침 위층에 살던 여기자 뤼크레스 넴로드가 이지도르 키첸버그라는 은퇴한 기자와 함께 사건을 추적한다. 살인의 용의자로 생각되는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클럽에 속한 사람들을 한 명씩 찾아가며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 클럽에 속해 있는 사람들은 각자가 인류의 기원에 대한 가설을 가지고 있다. ‘창조론’, ‘라마르크 변이설’, ‘다윈의 자연선택설’과 같이 중학교 생물 시간을 떠올리게 하는 것들도 있고, 인간은 다시 원숭이로 돌아간다는 ‘역진화론’, 인간은 외계에서 온 바이러스에서 생겨났다는 ‘별똥별 이론’, 인간은 원래 바다의 영장류였다는 ‘해양 기원론’과 같은 조금은 당황스러운 것들도 있다.

책을 읽다 보면 ‘인류의 기원’에 대한 여러 가지 가설들을 소개가 주목적인 책인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드는데, 실제로 그러하다. 에필로그를 읽어 보면 작가는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라는 질문을 사람들이 모두 생각해 봐야 하는데, 소설로 그것을 전달하고 싶었다고 한다. 다행히도 이런 순수(?) 하지 않은 의도에도 불구하고 책은 잘 설계되어서 끝까지 흥미를 잃지 않게 해 준다.

책이 쓰인 시점은 1998년이니, 이미 20년 전이다. 그동안 인간 게놈 프로젝트를 포함해 다양한 과학적인 연구가 있어 왔다. 따라서 책에서 주요한 소재로 다루는 인류의 미싱 링크(한 종에서 다른 종으로 진화할 때의 과도기적 단계의 생물 종)는 더 이상 큰 의미를 갖지 않아 보인다.

소설을 읽으면 상상하지도 못했던 세상을 엿볼 수 있다. 이번에는 고생물학자와 기자의 세상을 엿보았다.

그럼 나는 다시 개발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