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경험으로

와이프와 아이들이 나간 사이에 이불 빨래를 세탁기에 넣고 돌렸다. 잠깐 컴퓨터를 하고 나서 봄이 오는 기운을 느껴 볼까 싶어 옷을 갈아입다가 돌려 둔 빨래가 생각이 났다. 아직 40분이나 남았다. 40분 동안 무엇을 할까 싶어 습관처럼 다시 책상에 앉았다가 며칠 전에 받아 두었던 “오직 경험으로” 책에 손이 갔다.

몇 달 전으로 기억한다. 브런치에 종종 글을 쓰곤 하는 슬기님의 글 중 하나에서 책을 내겠다는 목표를 보았고 댓글을 통해서 응원했다. 책이 나오면 꼭 사겠다고. 그런데 몇 주 전에 텀블벅을 통해서 출판 펀딩을 한다는 소식을 지인을 통해서 접하게 되었다. 하하 어쩌겠나. 후원해야지.

브랜드 에세이라고 분류가 적혀있다. 그들의 브랜드 경험을 편하게 들려준다고 한다. 어디 한번 들어볼까 싶어서 책장을 넘긴다. 책은 ‘잿빛 속에서 푸른색 찾기’, ‘무심한 일상을 깨우는 법’, ‘문학 속에 핀 브랜드’ 세 가지 주제로 각각 4가지의 장소 혹은 브랜드를 소개한다. 책은 이렇게 말한다.

  • “호성님. 저희 이번에 여기를 가보기로 했어요. 혹시 같이 가실래요?”
  • “아. 거기에 뭐가 있는데요? 거기는 왜 가는 건가요?”
  • “일단 한번 따라와 보세요.”

책장만 넘기면 되니깐. 따라가 본다.

도착하니 입구에서부터 보영님은 사진을 찍느라 정신이 없는 것 같다. 슬기님은 이미 이야기할 거리들을 잔뜩 준비해 온 것 같다. 이곳저곳을 눈에 담아 보는데, 조금 다르다는 느낌이 들지만 왜 특별한지는 잘 모르겠다. 구경을 마치고 공간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며 보영님과 슬기님이 나누는 이야기를 들어본다. 이 브랜드에 대해서, 이 장소에 대해서, 이곳에 담긴 이야기에 대해서. 그 이야기를 듣고 나니 다르다는 느낌이 이제 특별함으로 다가온다.

책은 길지 않다. 미술관에서도 한 작품을 오래 감상하지 못하는 내게는. 세탁기에서 소리가 나기 전에 책의 마지막 장을 덮었다. 브랜드에 대한 감성이 높아졌는지는 모르겠으나 이 책을 처음 받았을 때 그들의 기쁨과 이 책을 한 권씩 포장해서 발송할 때의 뿌듯함을 전달받은 기분이다. 부러운 마음이 든다. 나도 언젠가 내 이야기를 책으로 만들어 볼 수 있는 기회가 있기를 바란다.

저자싸인